티스토리 뷰
극복하기 힘든 신체적 열세,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NBA에서 활동하고, 명예의 전당에 오를 정도의 업적을 이룬 선수인 야오밍 선수에 알아보겠습니다.
야오밍의 성장
야오밍은 1980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프로 농구선수였는데, 그 영향으로 9살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의 유전자 덕분으로 10살 때 키가 165cm까지 자랐습니다. 13살 때는 벌써 193cm까지 자랐고, 훈련을 통해 기본기를 갖춘 덕분에 프로구단에 들어가 주니어팀에서 활동했습니다. 17살에 바로 성인팀에 들어가 선수로 뛰었는데 벌써 220cm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교체멤버로 활약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1998년 나이키 농구캠프에 초대받아 세계를 체험하고 NBA를 체험하고 NBA선수가 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중국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아시안컵까지 우승을 차지한 야오밍은 명실상부 아시아의 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2002년 NBA드래프트에 신청하려고 했습니다. 휴스턴 로케츠에 1순위로 뽑혀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NBA에서의 활약
야오밍은 다른 선수들이 보기엔 내성적이로 덩치만 큰 동양인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어소통도 서툴고 인종차별도 존재하기 때문에 적응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구단측에서 중국강사를 초빙해 중국 문화에 대해 다른 선수들에게 알려주는 노력을 하였고, 이로 인해 선수들과의 융화가 잘 이루어졌습니다. 야오밍은 영어 실력이 부족하지만 떠듬거리면서 영어로만 말하려고 노력했고, 4년 차가 되었을 때는 영어로만 대화가 가능할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야오밍의 평가는 극으로 갈렸는데, 슈팅 감각이 좋아 골밑 이외의 지역에서 다양한 공격루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덩치가 큰 이유로 느리고 체력 소모가 빠르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이 말했던 느린 스피드는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발목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방송에서 조롱거리가 되는 상황도 많았지만, 적극적인 성향을 보이며 과격한 플레이를 보였고, 8경기째에 20점을 기록하고 슛 성공률 100% 기록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이후 30 득점을 뽑아내기도 하며 슛도 잘하고 패스에도 능숙한 모습을 보이자 구단은 선발로 기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빅맨 포지션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때 샤킬오닐이 부상에서 복귀하였고, 두 사람의 대결을 팬들은 기대했습니다. 샤킬 오닐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며 야오밍을 도발하였만, 샤킬오닐은 경기에서 그와 맞상대를 하며 야오밍의 실력을 인정하였습니다. 이후 본인의 발언을 사과하며 야오밍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불운한 부상들과 투혼
야오밍은 첫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최강의 듀오였던 코비, 샤킬오닐을 만나 1라운드 패배를 하였습니다. 2004-05 시즌 2년 연속 득점을 티맥을 영입해 우승을 노려볼 법한 팀이 되었습니다. 예상대로 좋은 조합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습니다. 하지만 또 1라운드에서 탈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2005-06 시즌 티맥이 부상을 당해 야오밍의 출전시간이 늘어나며 부담이 늘어났습니다. 몸에 부담이 되어 결국 전에 부상당했던 부위인 왼쪽발에 또 부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부상에서 복귀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은 부상을 또 당해 시즌아웃 당하고 말았습니다. 다음 시즌 다시 복귀한 야오밍은 정상급 센터로 활약을 시작했는데, 항상 패배하던 오닐에게 처음으로 승리하며 리그 탑급의 센터임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또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키가 너무 커서 부상의 위험이 항상 있었습니다.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적극적인 플레이를 했지만 결국은 플레이오프 2라운드 진출의 벽을 넘지는 못하게 됩니다. 계속 왼쪽발의 피로골절이 야오밍의 발목을 잡습니다. 구단의 배려 덕분에 휴식을 취하면서 컨디션을 조절을 잘할 수는 있었습니다. 2008-09 시즌 처음으로 2라운드 진출을 했지만 우승후보 LA레이커스를 만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1차전에 오른쪽 무릎에 다시 부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야오밍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다시 코트에 나와 투혼을 펼치며 1차전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투혼을 보여줬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커리어가 이렇게 끝났다고 생각될 정도로 몸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후 다시 복귀하기 위해 두 차례의 수술을 하며 복귀를 하고자 하지만 결국은 회복하지 못하고 은퇴를 결정하게 됩니다.
결론
비록 느린 스피를 가졌기 때문에 속공과 몰밑 이외의 지역에서 수비에 대한 불안함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이 단점을 가릴정도의 수준 높은 공격력을 보여줬습니다. 숨만 쉬어도 파울이 불릴 정도의 편파판정이 심했지만 그걸 다 감수하면서 한때 리그 최고의 센터에 오를 정도로 야오밍은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그래서 2016년에 샤킬오닐과 NBA 명예의 전당에 등록되었고, 2017년에 휴스턴 로케츠에서 야오밍의 선수번호를 영구 결번시켰습니다. 은퇴 후 자신을 키워준 상하이 샤크스의 구단주가 되어 팀을 운영하고, 야생동물의 보호를 위한 광고를 찍는 등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중국농구협회장의 자리에 올라 유망주 발굴에 힘쓰고 있습니다. 인성도 뛰어난 야오밍 선수 같은 동양인 선수가 다시 NBA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