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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멜로 볼 선수
라멜로 볼

라멜로의 유년시절

 라멜로 볼은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의 혼혈아이입니다. 삼 형제 중 막내였던 그는 3살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형제들을 농구스타로 키우기 위한 아버지의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나이차가 있는 형들과 농구를 하던 라멜로 볼은 신체적인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슈팅거리를 조금씩 늘리기 시작했고, 7살이 되어서는 벌써 딥쓰리를 넣을 정도의 슈팅거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유년시절 계속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경기를 하면서 실력과 담력을 같이 쌓았습니다.

라멜로의 고교 시절

 고등학교는 치노힐스에 진학해 두 형과 함께 첫 시즌 무패와 우승까지 차지를 하였고, 신인왕을 차지했습니다. 다음시즌에도 무패를 하며 60연승을 기록하였습니다. 다음 경기에서 61연승에 실패를 하였고, 이 일로 각성한 라멜로 볼은 92점을 혼자 넣으며 어마어마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습니다. 아버지의 노이즈 마케팅 덕분이긴 했지만 NBA 스타들이 경기를 보러 올정도로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형이 NBA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뽑히자 라멜로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고, 다음 고교시즌에 대한 기대가 커졌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아버지 라바 볼이 신임감독과의 트러블이 생기게 되었고 라멜로를 홈스쿨링 시키겠다고 자퇴를 시키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대학리그에서 뛰고 있던 둘째 아들 절도 사건으로 인해 자퇴를 시켜버렸습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 자퇴생이 되어버렸고, 프로무대에서 커리어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스폰하고 있는 유럽리그의 팀으로 가게 됩니다. 저돌적인 모습으로 팬들의 지지는 받았지만, 감독의 미움을 사게 되게 되었고 4개월 만에 미국리그로 복귀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창설한 JBA리그에 가서 활약을 펼치게 됩니다. 하지만 수준이 형편없던 리그는 라멜로의 놀이터였고, 평균득점 40점 이상을 기록하며 활약을 합니다. 하지만 수준이 형편없던 리그에서 라멜로의 평가는 점점 하락하게 됩니다. 결국 라멜로는 고등학교로 다시 들어가게 되고 아버지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먼 지역으로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마지막 고등학교 시즌에 문제로 지적되었던 개인주의 성향을 많이 벗어나고, 키도 2미터 이상으로 자라면서 육체적인 문제도 극복하였고, 패싱능력과 드리블 능력도 끌어올려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라멜로의 커리어

 유럽프로리그에서 뛰었기 떄문에 대학경기를 뛸 수 없었고, 고교 졸업 후 1년 후 NBA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호주리그로 가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호주리그에서 활약을 하며 NBA드래프트 예상 순위 4순위까지 단숨에 올라갑니다. 하지만 유년시절 무리하게 슈팅거리를 늘리는 부작용인지 슈팅폼이 너무 안 좋게 굳어져 버린 단점이 생겨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3점 적중률이 낮았고, 수비에 약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수비에 대한 열정이 있고, 슈팅폼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지 라멜로에 대한 관심은 아직 컸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대학리그가 중단되어 대학리그 선수들의 선수가치는 제대로 평가되기 어려웠고, 아버지의 노이즈마케팅 덕분에 라멜로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졌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NBA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샬럿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샬럿에는 라멜로 아버지의 노이즈마케팅의 희생양이던 마이클 조던이 구단주로 있어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라멜로의 아버지인 라바 볼은 마이클조던을 NBA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며 치켜세웠습니다. 샬럿은 NBA 30개 구단 중 가장 인기가 없지만 라멜로에 인기에 힘입어 약간이나마 인기가 오르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결론

아버지의 오지랖때문에 순탄치 않았던 라멜로 볼, 지금 샬럿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좋은 활약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화려한 그의 농구 스타일은 매우 맘에 들고 앞으로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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