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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마술을 하는듯한 패스를 뿌려대며 코트를 누비던 선수가 있습니다. 코트 위 선수뿐만 아니라 팬들까지도 속이는 화려한 패스로 코트를 누비던 제이슨 윌리엄스 선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출생과 성장
제임슨 윌리엄스는 1975년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벨레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천적으로 어릴 때부터 공을 다루는 재주가 뛰어났습니다. 7살 때부터 이미 NBA를 꿈으로 삼았던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화려한 패스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는 화려한 플레이로 많은 인기를 가졌지만, 그의 고등학교의 명성이 낮고 성적이 좋지 않아 대학교에서 입학제의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명성이 낮은 대학교에 들어가 그 당시 감독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 감독이 명문학교로 이동하게 되었고, 윌리엄스에게 그에게 전학을 권했습니다. 이에 윌리엄스는 그를 따라 전학을 가서 활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대마초 문제로 퇴학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NBA드래프트에 참여해서 7순위로 뽑히게 됩니다.
NBA 루키시절
윌리엄스를 영입한 팀은 세크라멘토 킹즈였습니다. 그 당시 포인트가드의 부족으로 윌리엄스를 영입한 것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윌리엄스는 바로 주전 멤버로 뛸 수 있었습니다.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화려하고 엄청난 패스를 뿌려대기 시작했고 윌리엄스는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몸과 모든 행동을 페인트로 활용을 하기 때문에 상대팀뿐만 아니라 팀도 패스를 예상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돌파능력 또한 뛰어나 득점에도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길거리에서나 볼법한 현란한 플레이를 하다 보니 스포츠 하이라이트에 자주 등장하였고 준수한 외모가 쇼맨쉽까지 겸비하여 엄청난 인기를 누렸습니다. 심지어 나이키 광고모델에 까지 섭외되어 각종 CF에도 출연하였습니다. 1년 차에 이러한 엄청난 주목을 받았지만 점점 그의 인기는 사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윌러엄스는 3년 차 시즌부터 점점 구설수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NBA에서 대마초를 금지시켰기 때문입니다. 윌리엄스는 약물검사에 적발이 되었지만 상담과 치료교육을 무시하면서 벌금과 5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아 팀의 망신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관중석에 있는 동양인에게 인종차별 발언 모욕죄를 저지른 일도 있었습니다. 경기력에서도 윌리엄스는 불안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이라이트에서는 그의 플레이는 화려하고 멋있었지만, 같은 팀조차도 받기 힘든 패스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턴오버를 일으키기 일쑤였습니다. 공격력은 뛰어나지만 수비력은 엉망이었기 때문에 팀 패배의 원흉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새크라멘토 킹즈는 멤피스 그리즐리고 그를 이적시킵니다. 멤피스에서도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고 팀 성적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전성기부터 은퇴까지
그러다 휴비 브라운이라는 감독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플레이가 크게 나아지게 됩니다. 그는 멤피스 그리즐리의 감독에 부임하자마자 그의 단점을 고치려고 합니다. 그는 감독의 말을 듣고 플레이가 점점 안정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화려한 플레이는 줄어들고 팀 승리 기여도가 높은 플레이를 하게 됩니다. 덕분에 멤피스는 창단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워낙 강팀들이 많았기에 플레이오프에서 우승까지는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우승에 가능성을 잡게 되는데 샤킬오닐과 드웨인 웨이드가 있던 마이애미에 들어가게 된것입니다.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올라가 우승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편파판정으로 논란이 컸었던 결승전 이었지만 윌리엄스에게는 최고의 순간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중간에 은퇴와 복귀, 부상 후 복귀 등 커리어를 유지하다가 마지막으로 멋진 모습을 보이며 12년의 NBA커리어를 마무리했습니다. 윌리엄스는 NBA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센세이셔널한 선수임에 틀림없습니다.
결론
애니메이션에서나 볼법한 화려한 패스와 코트 위의 선수와 팬들, 심지어 카메라까지도 속는 패스를 하는 선수였습니다. 길거리농구에서나 볼법한 플레이들을 화려하게 선보이며 한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선수입니다. 정형화 됐다고 생각되는 농구계에 다시 이런 선수가 나타나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