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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들이 넘치는 NBA판에서 174.6cm의 키로 골밑을 휘젓고 다니던 선수가 있습니다. 각종 현란한 스킬과 득점으로 어시스트를 하면서 전 세계의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현재 NBA에서 가장 작은 키를 가지고 있는 아이재아 토마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출생과 성장
토마스는 1989년 미국 워싱턴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토마스의 이름은 아버지의 어이없는 내기로 인해서 지어지게 됐습니다. 토마스가 태어나던 해에 디트로이트 팀의 주장인 아이재아 토마스의 이름을 따라서 지어지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이름을 짓게 된 어머니는 스펠링을 추가해 성경에 나오는 과거 선지자의 이름을 쓰는 걸로 합의를 하고 이름을 결정하게 됩니다. 과거 레전드 선수의 이름을 받아서 그런지 토마스는 어릴 때부터 농구에 소질을 보였습니다. 자신이 동경하던 앨런 아이버슨의 경기 영상을 보면서 따라 하면서 연습을 했습니다. 매일매일 연습을 하는 노력이 쌓여 농구 선수의 꿈을 이룰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팀의 주장을 맡으며 워싱턴 주의 다른 팀을 상대로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런 활약으로 졸업반 때에는 전국 선수들 중 92위에 랭크되었습니다. 이에 워싱턴 대학의 입학제의를 받아 입학을 하게 됩니다. 그가 간 대학교는 10개의 대학이 속한 퍼시픽 10 컨퍼런스라는 지역에 속해 있었는데 수준이 높은 지역이었습니다. 토마스는 1학년때부터 주전자리를 차지하여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그는 계속해서 득점과 어시스트에서 큰 발전을 보였고, 3학년이 되었을 때 팀을 챔피언으로 만듭니다. 아쉽게도 토너먼트에서는 32강에서 탈락을 했지만, 평균 16.8 득점과 6.1 어시스트라는 준수한 기록으로 NBA 드래프트에 뛰어들어 꼴찌로 새크라멘토 킹즈의 선택을 받습니다. 내 외곽을 가리지 않는 득점력과 빠르고 안정적인 드리블과 센스 있는 패스기술까지 갖춰 포인트가드로써 능력을 갖췄지만, 키가 171cm 밖에 되지 않아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보스턴에서의 짧은 전성기
이러한 낮은 평가를 받은 토마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투쟁심을 불태웁니다. 어릴때부터 키에 대한 편견에 익숙했습니다. NBA에서 작은 키로 성공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를 잡았습니다. 단단한 몸과 폭발적인 스피드를 가지기 위해 몸을 단련했고, 골반과 척추 쪽의 코어근육을 단련했습니다. 다행히 팀에 포인트가드가 2명뿐이었고, 출전기회를 많이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식스맨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전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는 꼴찌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인들보다 주목을 받아 2월과 3월의 루키에 선정되게 됩니다. 그 후 2년 뒤 토마의 성적도 2배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2013-14 시즌에 트리플 더블을 달성하고, 평균 20.3 득점을 달성하는 등 단신 가드의 가능성을 똑똑히 입증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스는 팀 성적이 나아지질 않자 토마스를 피닉스로 넘겨버립니다. 피닉스에서 그는 벤치 멤버로 내려가게 됩니다. 이에 불만을 표시하던 토마스는 시즌도중 보스턴으로 이적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보스턴에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2015-16 시즌 첫 두 경기에서 벤치출전을 했지만 가장 많은 득점을 하며 본인의 존재를 뽐냈습니다. 슈팅 능력은 정상급이라 할 만큼 뛰어났습니다. 다부진 몸에 파워도 좋고 무게 중심이 낮아 힘에 잘 밀리지 않았습니다. 큰 활약 덕분에 토마스를 중심으로 전술이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이 시즌에 올스타에 선정되기까지 합니다. 다음 2016-17 시즌 더욱 잠재력이 폭발하여 20점 이상 득점을 43경기 연속으로 기록하면서 엄청난 활약을 하게 됩니다.
플레이오프에서의 활약과 추락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토마스는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맙니다. 여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지만, 팀의 주득점원인 본인이 빠질 수 없었기에 장례식에 늦게 참여하기로 하고 1,2차전 출전을 결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불안정한 멘탈때문에 모두 패배를 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장례식에 다녀온 뒤 마음을 다잡고 굳은 다짐을 했는지 플레이가 좋아졌고, 내리 4연승 하며 2라운드 진출에 성공을 합니다. 1차전에 앞이빨에 부상을 당했지만 엄청난 활약을 하며 3라운드까지 진출에 성공합니다. 3라운드에서 르브론이 이끌던 클리블랜드를 만났고, 2라운드에서 7차전까지 가는 접전으로 인한 체력 방전과 토마스의 골반 부상으로 인해 탈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골반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여서 보스턴은 클리블랜드로 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클리블랜드에서 다시 시작한 토마스는 본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맙니다. 슈퍼스타 르브론이 있는 상황에서 메인볼핸들러의 역할을 부여받을 수 없게 되었고, 약점이었던 수비력을 공격으로 메꿨던 상황에서 이런 상황이 오자 팬들과 구단은 그를 외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15 경기만에 LA 레이커스로 쫓겨나게 됩니다. 하지만 고관절 부상으로 인해 시즌이 끝나자 방출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에 덴버에서 최소 계약을 맺고 다시 부활을 꿈꿨지만 몸과 정신적으로 힘들어진 토마스는 결국 로테이션선수로 있다가 조용히 팀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결론
NBA를 뒤흔들 정도의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선수였지만, 불리한 키를 극복하기 위해 과도한 운동능력을 사용하게 되었고, 골반 관절뼈가 깎이는 고통과 함께 커리어의 추락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초단신임에도 패스가 아닌 득점위주로 플레이하는 성향이 토마스를 더 빠르게 추락하게 만들었습니다. 딱 2년의 황금기 이후로 활약이 없던 토마스는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