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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 브라이언트 사진
코비 브라이언트

NBA가 낳은 슈퍼스타를 말하라고 하면 빠지지 않는 선수, LA 레이커스의 레전드 코비브라이언트입니다. 코비브라이언트가 어떻게 NBA에 입성하게 되었고, 그 업적이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성장과정

 코비브라이언트는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과거에 NBA선수였고 코비가 6살 때 이탈리아 이주하였습니다. 코비의 이름은 지어진 이유가 특이한데, 그의 아버지가 일본의 고베규를 좋아하여 아들의 이름을 Kobe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코비는 로워 메리언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3년 동안 활약을 했습니다. 코비가 고교에서 기록한 전적은 77승 13으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평균 30.8 득점, 12 리바운드, 6.5 어시스, 4 스틸, 3.8블록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고교 생활에서 두각을 드러낸 코비는 바로 NBA에 드래프트를 신청하게 되었고 1라운드 13순위로 샬럿 호네츠에 지명되었다가 트레이드로 LA 레이커스로 이적을 하게 되었습니다. 

코비의 루키 시절

 코비는 루키 시즌은 대부분 벤치에서 보냈습니다. 두 번째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뤘는데 기록은 6분 출전에 1 리바운드, 1 블락을 기록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두 번째 출정에서는 자유투로 1 득점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누가 봐도 가비지 멤버였던 코비였습니다. 하지만 시즌 중반에 들어서 출전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시즌 후반에는 벤치 에이스로 활약했습니다. 루키 시즌에 주전으로 출정한 경기고 6경기나 되었습니다. 코비는 이 시즌에 71경기에 출전하여 15.5분을 뛰었고, 평균득점 7.6점을 기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코비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 5차전에서 영웅이 되고 싶은 욕심에 에어볼을 난발하였고, 결국 코비의 흑역사가 되었습니다. 2년 차 시즌에는 79경기에 출전하였고, 식스맨으로 활약하였습니다. 출전시간도 평균 26분으로 늘어났고, 평균 득점도 15.4 득점으로 늘어났습니다. 세 번째 시즌은 드디어 풀타임 주전선수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평균 38분으로 출장시간이 늘어났지만, 평균 20 득점에 실패하여 아직 주전가드가 되기에는 모자라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코비의 공격 스타일

 코비의 롤 모델은 마이클 조던이였습니다. 마이클 조던과 포지션이 같았고 스타일도 비슷하여서 마이클 조던의 하위호환이라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마이클 조던은 역대 최고의 선수고 조던과 비교가 된다는 것조차 엄청난 일입니다. 코비는 득점 욕심이 많아 무리한 슛을 많이 던지는 선수였고, 그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선수였습니다. 보통의 선수는 쏘지 않았을 상황에서도 슛을 쏘았지만, 평균 이상의 득점력을 선보이는 선수였습니다. 신체적인 능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엄청난 노력과 정신력으로 레전드 선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연성만큼은 최고였는데, 이 유연성으로 리버스 덩크나 불가능할 것 같은 슛을 성공시키면 팬들의 환호를 일으켰습니다. 플레이 스타일이 이기적이라는 말이 커리어 내내 들려왔습니다. 선택하는 우선순위가 슛이기 때문에 경기가 안 좋아질수록 슛을 난사하게 되었습니다. 팀에서 코비가 공을 잡으면 패스는 없다는 인식이 강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맘먹고 패스를 우선으로 생각하면 질 좋은 패스를 잘하는 것을 보면 패스를 못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결국은 슛을 우선으로 하는 선수여서 문제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슛 성공률이 45%로 절반에 가깝기 때문에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무서운 선수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결론

 코비 시즌 MVP 1회, 결승전 MVP 2회, 올스타 MVP 4회, NBA 우승 5회를 기록하였습니다. 한 번도 하기 힘든 우승을 5번이나 차지한 건 정말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LA레이커스에서 20 시즌을 뛰었고, 코비가 사용하던 등번호 8번, 24번 모두 영구 결번이 되었습니다. 환상적인 모습으로 코트를 누비던 코비의 모습은

다시는 볼 수 없지만 그의 모습은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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